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가 모하마드 칸 (문단 편집) === 카림 칸의 죽음과 잔드내전, 그리고 아가 모하마드 칸의 웅비 === 1778년, 잔드 왕조의 개국 군주 카림 칸의 죽음을 틈타 연금되어 있던 아가 모하마드 칸은 쉬라즈를 탈출하였다. 이에 자키 칸은 조카 알리 모라드 칸을 보내 추격하게 했는데, 후자는 이스파한에 당도한 후 아볼 파스를 지지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쉬라즈를 탈출했던 사데크 칸 역시 니자리 이맘 아불 하산 알리의 도움으로 [[케르만]]에서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키 칸은 태후의 요청으로 아볼 파스를 모하메드 알리 샤와 함께 공동 샤로 추대했지만, 연이은 반란 소식에 결국 아볼 파스를 감금하였다, 그후 반란 토벌에 착수한 자키 칸은 먼저 [[이스파한]]으로 출병하였는데, 중간 지점의 이즈다카바스에서 과도한 징세에 저항한 주민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그 정도가 지나쳐 신하들과 병사들 역시 충격을 받았고, 결국 자키칸은 막사에서 자고 있던 도중에 신하들과 병사들에게 암살된다. (1779년 6월 6일) 그 무렵, 모하메드 알리 칸 역시 심장마비로 요절하였다. 자키 칸의 부고가 전해진 후 사데크 칸은 쉬라즈로 진격, 자키 칸의 아들 아크바르 칸을 간단히 제압하였다. 6월 19일, 쉬라즈에 입성한 사데크 칸은 아볼 파스를 단독 샤로 추대하였다. 아볼 파스는 정치보다는 향락에 관심이 많았기에 사데크 칸이 실권을 휘두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은 사데크 칸은 8월 22일, 조카를 폐위해 실명시키고 스스로 샤가 되었다.[* 내전 도중 잔드 조가 점령했던 [[바스라]]는 [[오스만]] 조에게 수복되었다.] 한편 정예 병력을 이끌고 이스파한에 주둔하며 고르간을 기반으로 한 카자르 조를 견제하던 알리 모라드 칸은, 주민들을 착취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그리고 1781년 2월, 쉬라즈를 포위한 그는 3월 14일 도시를 함락, 사데크 샤를 죽이고 샤가 되었다. 알리 모라드 샤는 사촌 루스탐에게 대군을 주어 마잔다란의 카자르 조에 맞서게 하였다. 루스탐은 자파르 쿨리 칸이 이끄는 카자르 군과 여러 차례 싸웠으나 결국 패퇴하였다. 이에 알리 모라드 샤가 친정에 나섰다. 그러자 쉬라즈 함락 당시 사데크 샤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자파르 칸이 기회를 틈타 이스파한을 포위하였다. 알리 모라드 샤는 전선에서 남하하였으나 이스파한 근처 무르차쿠르 마을에서 매복당하여 전사하였다. (1785년 2월 11일) 이로써 육촌인 자파르 샤가 즉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